모든 것이 쉬워지는 시대…어려움이 갖는 반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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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모든 것이 쉬워지는 시대…어려움이 갖는 반발력 국제다원예술축제의 이름 ‘페스티벌 봄’

기사입력2025-05-14 09:35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네이처 시어터 오브 오클라호마, ‘삶과 시절:에피소드 1’

이해하지 못한 것,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수록 오래 기억될 때가 있다. 내게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의 목록이 끈질기게 기억 속에 남아 있고, 그 하나가 페스티벌 봄이라는 공연이었다. 페스티벌 봄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봄이 올 때쯤 개최되었던 ‘국제다원예술축제’의 이름이다. 한국이라는 맥락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작업이 여기서 종종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윌리엄 포사이스(William Forsythe), 제롬 벨(Jérôme Bel)과 같은 이들의 작업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처음 페스티벌 봄을 보았을 때, 그때는 이런 이름 따위는 전혀 모르던 시기였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갑작스럽게 보게 된 공연은…, 헛기침이 튀어나오듯 질문을 튀어나오게끔 했다. 내가 처음 본 페스티벌 봄 공연은 뉴욕의 퍼포먼스 그룹인 네이처 시어터 오브 오클라호마(Nature Theater of Oklahoma)가 공연한 ‘삶과 시절:에피소드 1’이었다. 춤과 노래가 섞인 극이었는데, 대부분의 대사가 이런 식이었다. “음…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극은 단원들이 친구와의 전화 통화를 녹음한 내용에 기초했다. 그렇기에 어떤 내러티브가 있다기보다는 추임새, 말 고르기, 의미 없는 웅얼거림 같은 것이 극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섯 시간이라는 꽤 긴 시간 흘러가는 극을 보며 졸기도 하고 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그러다 속으로 이렇게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 ‘이게 대체 뭐지?’

페스티벌 봄 2012 포스터

페스티벌 봄을 창설한 감독 김성희가 작가 서현석과 함께 쓴 ‘미래 예술’(2016)은 중요한 공연예술 실천을 망라하고 소개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하지만 저자가 저자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페스티벌 봄과 같은 과거의 공연과 유기적으로 얽힌 채 기능하는 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책의 소제목은 질문의 목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연극이란, 움직임이란, 춤이란, 무대란 무엇인가? 무엇이 그것을 그것으로 만들며 그것은 어떻게 그것으로 작동하는가? 페스티벌 봄은 답안을 만들고 보이기 위한 곳이 아니라 질문을 더 밀어붙이기 위한 곳이었다. 퍼포먼스 이론가 에리카 피셔-리히테(Erika Fischer-Lichte)는 퍼포먼스가 ‘신체적인 것의 공동 현존’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한 적 있다. 돌이켜보면, ‘이게 대체 뭐지?’라는 질문이야말로 페스티벌 봄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공동 현존을 위한 시작점, 더 두터운 다른 질문을 위한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페스티벌 봄은 자신을 ‘국제다원예술축제’로 소개하고 있었지만, 이건 행정적 편의에 맞추어 스스로를 소개하기 위한 하나의 가면에 가까웠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곳은 퍼포먼스, 포스트-드라마틱 시어터 등 무대 내외에서 벌어질 수 있는 급진적 실천을 엮어 만든 장소였고, 그만큼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든 곳이었다. 페스티벌 봄이 개최되었던 시기를 돌이켜보는 것은, 이제 노스탤지어적인 감각과 분리되기 어려운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2008년에서 2013년이라는 시간이 벌써 10년도 더 지난 시간이 되어버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페스티벌 봄은 퍼포먼스와 포스트-드라마틱 시어터라는 범주에, 나아가 국제적이고 다원적인 동시대 미술이라는 범주에 아직 잠재성이 얼마간 남아있던 시기의 예술 실천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러하다.

미술평론가 케이트 브라운(Kate Brown)은 오늘날 대부분의 퍼포먼스가 ‘산만한’ 환경에서 상연되고 감상된다고 말한다. 주의를 기울여가며 집중해 감상하는 태도가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하는 것인데, 이유는 소셜미디어에 있다. 대부분의 퍼포먼스가 소셜미디어에 곧바로 옮겨지고 공유되는 상황이기에, 결과적으로 그것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소셜미디어에서 사후적으로 감상될 때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경향을 가리켜, 브라운은 퍼포먼스가 ‘최적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말하자면 페스티벌 봄은 ‘최적화’되기 이전의 실천이었다. 이 점 역시 그것에 모종의 노스탤지어가 드리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페스티벌 봄이 가졌던, 그것을 보고 느꼈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어려움은 무언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고, 그 무언가를 비교적 쉽게 이해하는 특정한 사회 집단의 아비투스(habitus,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개념으로, 개인이 자신의 계급적 조건 속에서 의식적, 무의식적 경험을 축적한 결과 형성된 습성 및 행위체계를 지칭한다)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수치심으로부터 오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려움이란 얼마간 계급적인 감각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꾸만 더 쉬워지고 최적화되려는 시대에 배치되었을 때, 어려움이 갖는 반발력이 존재할 테다. 페스티벌 봄은 내게 그러한 반발력의 사례로 꾸준히 되돌아오는 이름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