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로 삐뚤빼뚤이었지만, 함께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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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우리는 정말로 삐뚤빼뚤이었지만, 함께 했었다 유리를 엮어 만든 창

기사입력2023-04-05 10:14

박선호 미술작가 (sunhopark.info@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우연한 만남과 경험은 나를 아주 먼 곳에 닿게 해주고, 가보지 못한 방향으로 이끈다. 2019년 여름, 우연한 기회로 영상작품 상영회 기획회의에 초대된 적 있었다. 알음알음 아는 얼굴들 사이로 처음 보는 낯선 이가 있었는데, 커다란 눈망울과 진중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말쑥하게 멋진 모자를 쓰고 있었고 딱딱한 말투로 자기소개를 했다. 여러 이유로 상영회는 무산되어 한동안 이 만남을 잊었다. 다시금 그와 연락이 닿은 것은 그해 겨울이 되어서 였고, 우연히 그의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함께 무언가를 해볼 생각이 있으신가요?” 그 제안으로부터 여러 준비과정을 걸쳐 2022년 5월 전시 ‘터치스톤(Touchstone)’을 열었다.

‘터치스톤(Touchstone)’, 전시 전경. 사진:최철림.

우리는 나이와 생김새부터 옷차림이나 취향까지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다. 드로잉, 조각, 영상, 설치. 작품을 만들 때 다루는 매체와 이야기하는 내용도 달랐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모두 꽃에 관심이 있다면 꽃에 관한 전시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우린 원하고 찾는 것이 달랐다. 가끔 몰래 한숨을 쉬기도 했다. 나와 너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괴롭기에. 분명 쉽지 않을 테지만 변화의 기점에 서 있는 네 명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간다는 핑계로 밥도 먹고 작업실에도 찾아가고 함께 전시를 보러 다니며 3년이 훌쩍 지났다.

그리하여, 우리는 ‘터치스톤(시금석)’이라는 이름으로 팀을 꾸리게 되었다. 시금석이란 본디 광물이나 금속의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기준이 되어주는 검고 단단한 돌을 뜻한다. 매끈한 검은 돌에 보석이나 광물을 긁어 그것이 가진 가치를 알아보는데 쓰이는 사물이다. 이 아름다운 사물의 쓰임에 착안해, 네 명은 함께 전시를 준비하며 서로의 시금석이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타인의 기준점이 되어 그가 원점에서 멀리 나아갔는지 지켜봐 주기로 한 것이다. 하나의 시금석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동하겠지만, 여러 개의 시금석은 판단의 기준이 아닌 이정표가 될 거로 생각하며.

박선호, ‘루트 드로잉(Route Drawing)’, 2022, 스테인드글라스, 30×100cm. 제작 협업:전유리, 사진:최철림.

미래에 만나게 될 관객이 어렴풋하게도 우리가 겪은 시간과 과정을 공유받을 수 있는 경험이 가능할까 질문하며, 작품을 이리저리 떠올려보고 그것들이 놓인 전시장을 거니는 상상을 했다. 관객이 가장 먼저 무엇을 보게 될까.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어떤 기분을 공유하고 싶은가.

이 질문들로부터 사방으로 뚫린 전시장 내부에 시간의 흐름을 만드는 좁고 긴 복도를 만드는 가벽을 구상하게 되었다. 긴 복도를 걷는 사람들이 작품에 둘러싸여 작품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기분을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는 시간적 경험을 공간적 경험으로 변환하기 위한 나름의 장치였다. 머릿속으로 미리 만들어낸 전시장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나는 그곳에 여러 질감과 색을 가진 유리창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전시를 준비하며 느낀 ‘차이’와 ‘연결’의 느낌에 집중했다. 함께하며 느낀 자글거리는 생의 여러 질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질문하며. 또한, 그것이 아름답길 바라며. 투명하고 정확하게 무엇을 비추거나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앞을 가리면서도 넘어서 볼 수 있는 창.

다채로운 질감과 모양으로 엮여 개별 형상이 돋보이지만 모두 이어져 있으며, 어지러운 무늬를 그리고 있는 창. ‘루트 드로잉(Route Drawing)’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다채로운 무늬와 질감을 가진 이 색유리의 창처럼, 우리는 정말로 삐뚤빼뚤이었지만, 함께 했었다. 함께한 시간과 여정이 새로운 길 위에 있는 미래의 우리에게, 현재의 내게 용기를 돌려줄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박선호 미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