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버지, 두 가족, 두 개의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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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두 아버지, 두 가족, 두 개의 삼성 ‘평범한 아빠들’의 시선까지 엇갈리게 만드는 현실

기사입력2014-02-25 10:38

김창훈 기자 (ckim2014@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아버지 한 사람이 있다. 강원도 속초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황상기씨. 끔찍하게도 아끼는 딸 유미씨도 있다. 단란한 가정에서 잘 자란 유미씨.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한다. 돈 벌어 아빠 차도 바꿔주고 동생 공부까지 시켜주겠다던 기특한 딸. 입사 2년만에 큰 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2년 후 아빠의 택시 안에서 숨을 거둔다. 스물 세 살. 꽃다운 나이의 딸은 가슴에 묻히고, 딸을 죽음으로 내몬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 아빠는 고단한 싸움을 벌인다. 이 과정을 고스란히 녹여낸 영화가 ‘또 하나의 약속’이다.

가슴아리는 사랑, 지켜주지 못한 뼈저린 후회, 그리고 피끓는 분노 위로 세상의 핍박과 현실의 남루가 오버랩되고, ‘이제 됐다’ 싶은 순간마저 결코 안심할 수 없는 무한의 공포가 진행형으로 변주된다. 앞으로 이들 부녀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영화는 이 즈음에서 현실에서 이들의 삶과 만난다. 제작비가 모자라 일정이 늦춰지고, 제작두레의 힘까지 빌린 다음에야 세상 빛을 본다. 확인되지 않은 외압설 논란을 빚기도 한다. 작품성과 화제성, 관객 평가, 12억원이라는 ‘거대한’ 광고비 집행에도 불구하고 끝내 배급 우선순위에서 배제된다. 70만명이라는 ‘소박한’ 손익분기점에는 아직도 다가가지 못했다.

또 하나의 아버지가 있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부장 김선범씨. 황상기씨처럼 평범한 가장이다. 유미씨처럼 아끼는 딸도 있다. 세상의 다른 딸들처럼 아빠와 회사가 자랑스럽다는 고운 딸이다. ‘또 하나의 약속’을 본 후 ‘나쁜 일을 서슴지 않는 아빠 회사’의 모습에 화가 났다는 딸의 고백에 아빠는 심란해진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설명한 후에야 딸의 오해는 풀렸다지만, 아빠의 고뇌까지 풀어진 것은 아니었다. 고심 끝에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 ‘삼성투모로우’에 글을 올린다. ‘그저 영화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엔 불러올 오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다른 아버지처럼, 딸에게만은 자랑스럽고 싶었을 것이다.

‘독극물을 사용하면서도 직원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직원의 아픔은 외면하고 숨기기에만 급급하고, 사람의 목숨을 거래하고 저울질했다’는 영화 속의 일은 삼성전자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이 글의 뼈대다. 회사의 노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터의 안전에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예술의 포장을 덧씌워 상대를 매도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일터에 조금의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로 김씨는 글을 마무리한다.

두 사람의 선한 아버지, 그들이 목숨처럼 아끼는 딸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사랑… 익숙한 구도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시각 외에는 다를 게 없는 보통의 ‘닮은꼴 아버지’들이다. 이들의 시선이 엇갈리는 현실이 슬프다. 정부나 연구기관이나 회사가 아닌 이들의 목소리에 세상이 귀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안타깝다. 그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