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에게 임금 수령을 위임·대리하는 행위는

프린트

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제3자에게 임금 수령을 위임·대리하는 행위는 대법원, 원칙적으로 무효…근로기준법 ‘임금의 직접지급 원칙’ 위반

기사입력2025-07-29 00:00

이동철 객원 기자 (leeseyha@inochong.org) ㅣ다른기사보기

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노동현장에서는 일용직 사용이 빈번하다. 인력소개업체라 불리는 ‘직업안정법’에 따른 유료직업소개 사업체가 대표적이다. 인력소개업체를 통해 구인을 하는 사업주와 구직자가 매칭된다. 고용형태는 일급제인데 1일 근로에 대한 일급 지급을 약속하고 근로를 제공한다. 유료직업소개 사업자는 인력 소개 후, 구인 사업주와 근로자가 근로계약이 성사되어 근로제공을 하고 임금지급이 이뤄지면 소개비를 받는다.

건설현장에도 일용직 근로자들을 개인적으로 모집해 하도급 공사업체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하게 해 근로를 제공케 하는 이른바 소개업자들이 있다. 일용근로자들의 근로제공을 받은 사업주가 소개사업장에 일괄적으로 일용직 근로자의 임금을 지급하는데, 사업주로서는 일일이 개별 근로자를 상대할 필요 없이 통일적으로 일용근로자들의 노무관리를 할 수 있는 편리성이 있기 때문에 종종 이러한 임금 지급관행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불법이다. 근로기준법은 임금의 직접지급 원칙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을 뿐이다(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

최근 대법원은 일당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들의 임금을 수령권을 위임받은 인력사무소 대표에게 지급한 건설공사업체의 행위에 대해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의 임금의 직접지급 원칙 위반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판결(대법 2025다 209645. 2025.06.12)을 내렸다.

◇사건의 경위=피고는 충청남도 홍성군 소재 아파트신축공사 중 철근콘크리트 공사를 하도급 받아 시공했다. 원고들은 피고와 일급 19만원을 지급받기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A는 팀장이라 불리며, 이 사건 공사의 해체작업에 필요한 인원을 피고에게 소개하고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원고들은 임금수령 본인동의서라는 제목의 위임장 또는 임금 대리수령 확인서 등을 작성해 피고에게 제출했다. 해당 서류에는 본인계좌 사용불가를 이유로 인력소개업체 대표 B에게 임금의 대리수령을 위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피고는 위와 같은 서류에 따라 B에게 원고들의 임금을 일괄해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고들은 적게는 약 47일에서 많게는 약 93일에 걸쳐 근로를 제공하고도 일급을 지급받지 못했다. B는 제1심 재판에서 원고들을 전혀 모르고 A와 피고 직원이 위임장과 신분증을 보내주어 자신의 계좌로 임금이 지급되면 A에게 보내주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피고가 근로자인 원고들에게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에 따라 직접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들과 아무런 상의 없이 B계좌로 임금을 지급한 것은 위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임을 주장했다.

피고는 원고들이 임금수령을 위임한 B에게 임금을 모두 지급했고, 설령 임금지급의무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원고가 B로부터 현금으로 수령한 임금이 공제돼야 한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법원의 판단=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이 임금의 직접지급의 원칙을 규정하고 그에 위반하는 자는 처벌하는 규정을 두어 그 이행을 강제하는 취지는, 직업중개인 등이 대리수령을 하는 방법으로 중간착취를 하는 것을 금지함은 물론,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을 공제하는 것 등을 막기 위해서다. 임금이 확실하게 근로자 본인의 수중에 들어가게 해 그의 자유로운 처분에 맡기고 근로자의 생활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근본 취지인 것이다.

건설현장 등에서 일용근로자들의 근로제공을 받은 사업주가 소개사업장에 일괄적으로 일용직 근로자의 임금을 지급하는 경구가 종종 있는데, 이는 엄연히 불법이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임금의 직접지급 원칙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은 다만, 예외사유로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는 근로소득세 원천징수분과 같은 조세부담이나 고용보험료 근로자 부담분과 같은 사회보험료, 그리고 근로자의 동의에 기초한 노동조합비 등에 한정된다.

심지어 위의 조항은 연소자인 근로자의 임금을 친권자인 부모 등이 대신 수령하는 것도 금지한다. 부모나 후견인이 연소자의 강제 노동을 강요해 착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따라서 상속권이 있는 유족이 사망한 근로자의 임금이나 퇴직금을 지급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임금의 대리수령은 그 적법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원심(대전지방법원 제5-1민사부)은 판결(선고 2023나 226895판결)을 통해, 원고가 인력사무소 계좌로 임금수령을 위임하는 행위는 무효이고, 사용자가 근로자의 임금수령 위임이 있었다는 이유로 인력사무소 계좌로 임금을 지급하더라도 임금 변제의 효력이 발생할 수 없다고 원고들의 손을 들어 줬다.

또한 원심판결은 “원고들이 인력소개업체 대표 B로부터 임금을 현금으로 수령했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해 “원고들로부터 임금 대리수령 권한을 위임받은 바 없고 A와 피고 직원이 위임장과 신분증을 보내줘 자신의 계좌로 임금이 지급되면 A등에게 보내줬다고 증언한 B의 주장을 신뢰해 피고의 주장을 배척했다.

대법원 재판부 역시 피고가 원고들을 대신해 B에게 임금을 지급한 행위가 근로기준법 제43조의 (임금의)직접지급 원칙 의무 위반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B가 사회통념상 원고들 본인에게 지급하는 것과 동일시되는 사람 또는 원고들 본인에게 그대로 전달할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으로 보기 어렵다”고 원심 판결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판결의 의의=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임금의 직접지급 원칙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의 근본 취지에 부합한 원칙적 판결이다.

앞서 1심(대전지법 선고 2021가단 140255판결)은 ‘임금 수령 본인동의서(위임장)’ 또는 ‘임금 대리수령 확인서’ 등을 기초로 원고들의 노임을 B에게 일괄적으로 지급한 피고의 행위가 원고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터 잡아 이뤄진 것으로 이를 임금직접지급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판사는 이에 대한 법리로 “사자에 의한 단순한 심부름에 불과한 경우 등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터 잡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때에는 임금을 직접 근로자에게 지급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위 원칙에 반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라며 생소한 논리를 제시했다.

이는 아마도 근로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해 가지는 채권으로 근로자의 임금채권에 대해 상계하는 경우의 정당성 요건을 설시한 대법원 판례를 적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법원은 판례(대법 선고 2001다 25184)를 통해 “사용자가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사용자의 채권으로 근로자의 임금채권과 상계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그 동의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터 잡아 이뤄진 것이라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 이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할 경우 임금의 직접지급 원칙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 본문 위반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채권과 임금채권의 상계의 동의 요건을 억지로 끌어와 근로자에 대한 일방적인 임금채권의 변제 요건에 대입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 뿐만 아니라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1심 판사가 제시한 ‘근로자 본인이 직접 수령할 수 없는 사정에 대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사자에 의한 임금의 수령도 가능한지’ 여부에 관해서는 그 정당성 요건을 제시하지도 않으며 원칙적으로 긍정하는 희한한 결론을 내놨다. 납득이 안 되는 대목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