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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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 '묶기'의 미학…한국 설치미술의 선구자 이승택

기사입력2025-07-30 08:28

김현성 기자 (kimh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구자 이승택(1932~)이 세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 바젤 2025’에서 선보인 작품들이 화제다.

◇비조각의 세계를 열다=지난 6월 17일부터 22일까지 스위스 바젤 메쎄에서 열린 페어에서 갤러리현대는 이승택의 대표작 30여 점을 선보였다.

90세를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승택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조각, 평면, 설치, 퍼포먼스, 대지미술, 포토페인팅, 콜라주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확장해 온 작가다.

이승택, 매어진 돌, 1985, 돌, 철사, 40.5×27×22.5cm. <제공=갤러리현대>

이승택은 1932년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1964년 전위적 조형성을 추구한 ‘원형회’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예술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1960년대부터 전통 옹기, 비닐, 유리, 각목, 연탄재 등 일상 사물을 작품의 재료로 삼으며 당시 미술계에서 통용되던 조각 개념과 결별했다. 전통적 옹기 제작방식을 채택한 대형 입체작업들을 천장과 벽면, 허공에 걸쳐 설치하며 “조각이란 무거운 재질의 작품을 좌대 위에 펼쳐 보이는 것”이란 기존 형식을 타파했다.

이승택의 ‘비조각’ 세계는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 하나는 바람, 연기, 불과 같은 물질적 양감이 없는 자연현상을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 ‘비물질’ 시리즈다. 다른 하나는 일상 사물을 묶거나 매어진 흔적을 간직한 오브제로 완성하는 ‘묶기’ 시리즈다. 특히 ‘묶기’ 시리즈는 사물의 형태와 본성을 뒤집고 익숙한 일상을 전복시키는 그의 주요 미적 방법론이다.

◇세계가 주목한 ‘묶기’의 미학=이승택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매어진 돌’ 시리즈는 선조들이 발이나 돗자리를 엮을 때 끈을 감아 늘어뜨리던 고드랫돌에서 착안했다. 그는 돌에 홈을 파서 철사나 노끈을 묶어 고드랫돌처럼 보이게 하는 작업을 통해 단단한 돌의 물성을 유연하게 전환시키는 시각적 전복을 이루어냈다. 이후 도자기, 여성 토르소, 책, 캔버스 등 다양한 사물을 노끈으로 묶으며 “그 형상이 새롭게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탐구했다.

이승택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묶기’라는 행위는 재료의 물성에 대한 착시를 일으키며, 생명력에 대한 환영을 불러오는 효과 때문에 작업 과정에 몰두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묶기’의 방법론은 단순한 형식 실험을 넘어 조각의 경계를 재정의하고 관념적 확장을 시도하는 핵심 조형언어로 작동한다.

이승택, 고드랫돌, 1987, 나무, 돌, 노끈, 78×90×5cm<제공=갤러리현대>

갤러리현대와 이승택의 인연은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을 계기로 시작됐다. 처음 갤러리 전시를 제안받았을 때 이승택은 “팔십 평생 동안 상업 화랑에서의 전시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며 의아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갤러리현대는 2012년부터 국내 전시는 물론 프리즈 뉴욕, 프리즈 런던, 아트 바젤 마이애미 등 국제 아트페어와 뉴욕, 런던, 베니스 등 주요 도시에서 이승택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그 결과, 이승택의 작품은 런던 테이트 모던, 뉴욕현대미술관(MoMA), 홍콩 M+,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세계 유수 미술관 컬렉션에 소장되었다. 2024년 3월에는 리졸리 뉴욕에서 작가의 첫 영문 모노그래프가 출간되며 국제적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승택은 홍대와 서울대로 양분된 한국 미술계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미술사학자 조수진은 그를 ‘시대의 내부고발자’라고 표현했다. 근대화를 부르짖고 서구 조각을 모방하기 바쁠 때, 그는 서구 조각 개념을 거부하며 한국 설치미술의 기원이 될 예술세계의 문을 열었다. 국가 권력이 예술과 비예술을 정하고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가르던 시절, 그는 소외된 민중 생활용품을 일부러 소재로 삼았다.

이승택은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고 말한다. 그의 ‘거꾸로’ 정신은 모든 사물과 관념을 뒤집어 생각하고, 미술이라고 정의된 고정관념에 도전해온 예술세계를 함축한다. 90세를 넘긴 지금도 형형한 눈빛과 꼿꼿한 자세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새 지평을 연 예술가의 불굴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