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인종과 연결하는 ‘서구적 가정’에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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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가치를 인종과 연결하는 ‘서구적 가정’에 의문 애매하게, 모호하게, 다양하게…아트-패션 콜렉티브 ‘CFGNY’

기사입력2025-05-12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한국어를 정말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을 볼 때면, 그 사람이 한국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이런 이들이 단체로 출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반가움과 함께 묘한 혼란이 밀려온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무엇이 나를 한국인으로 만들고, 그들을 외국인으로 구분 짓게 하는가?’ 이 질문은 곧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복잡한 층위를 갖는지를 상기시킨다. 순혈주의는 허상이며, 정체성은 대표적 지표(언어, 지역, 피부색 등)로 설명될 수 없다. 오히려 정체성은 시대와 관계, 문화, 감각의 층위 속에서 구성되고 끊임없이 재조정된다.

이러한 경계의 모호함을 감각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예술언어로 풀어내는 아트-패션 콜렉티브가 있다. 바로 CFGNY다. 이들은 이름부터 유동적이다. CFGNY는 ‘Concept Foreign Garments New York(개념적 외국 의류 뉴욕)’의 약자이지만, 때로는 “Cute Fucking Gay New York(귀엽고 졸라 퀴어한 뉴욕)”으로 말하거나, “Certain Forgotten Gestures Near Yourself(당신 곁에서 잊혀진 몸짓들)”로 풀어쓰는 등 이름조차 다양하게 변주한다. 이름에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과 실천이 근본적으로 고정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들은 모든 것을 단정하지 않는다. 이들의 예술은 그 단정할 수 없음, 즉 모호함과 불안정성에서 탄생한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CFGNY는 ‘아시아성’, ‘복제’, ‘경계’와 같은 개념들을 다루면서 유쾌하면서도 비판적인 시선으로 구분과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이들의 작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진짜와 가짜, 고유성과 모방, 동양과 서양의 위계 구도를 교란하며, 미학적·사회적·정치적 감각에 균열을 일으킨다.

CFGNY의 네 멤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Ten Izu, Daniel Chew, Tin Nguyen(앉은 사람), Kirsten Kilponen, Portrait by Elle Pérez. <출처=www.pinupmagazine.org>

◇모호한 아시아성=CFGNY은 서로 비슷한 배경을 가진 아시아계 아티스트 틴 응우옌(Tin Nguyen)과 다니엘 츄(Daniel Chew)에 의해 2016년 뉴욕에서 결성되었다. 두 사람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뉴욕의 미술·패션계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대상화되고 구분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두 사람은 비슷한 배경과 감수성을 공유하면서도, 내부적 메커니즘에 의해 경쟁자 역할을 강요받았다. 소수자 정체성이 타자화되는 이 구조 속에서 이들은, 경쟁이 아닌 협업을 택했고, 공동의 실천이 만들어낸 감각을 예술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2020년경, 이 듀오에 커스틴 킬포넨(Kirsten Kilponen)과 텐 이즈(Ten Izu)가 합류하면서 CFGNY는 아트-패션 콜렉티브이자 패션 레이블로 확장되었다. 이들은 패션을 기반으로 퍼포먼스, 비디오, 사진, 조각, 설치물 등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예술적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CFGNY의 문제의식과 협업방식은 이들의 작업 전반에 걸쳐 일관된 예술적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네 명의 멤버는 각자 주력하는 분야가 있음에도, 작업의 전개 과정은 유동적이고 교차적이다. 예를 들어, 틴 응우옌은 패션 디자인의 전반을 구상하고, 다니엘 츄가 영상 작업을 주도하며, 커스틴 킬포넨은 공간과 설치를, 텐 이즈는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그러나 이 모든 작업은 고정된 영역이 아닌, 서로의 감각이 스며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처럼 CFGNY의 작업은 ‘누구의 것’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늘 ‘공동의 것’으로 완성된다.

이들은 특히 ‘모호한 아시아 정체성’에 방점을 두고 작업하는데, 그 대표적인 전시가 2023년 뉴욕에 있는 Japan Society에서 열린 ‘Fashion Max 2’다. 이 전시는 전통적인 의미의 전시도, 흔히 보는 패션쇼도 아니다. 오히려 정체성의 집단적 현현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전시는 35명이 넘는 아시아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이 모델로 런웨이에 참여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전통복을, 또 다른 일부는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하이브리드 의상을 착용했다. 이는 기존의 서양 시선에서 만들어진 고정된 아시아 정체성, 즉 ‘정형화된 아시아성’을 교란한다. 이 전시는 질문한다. “과연 무엇이 아시아적인가?” 이 전시는 ‘대표 아시아성’이 아니라 ‘다양한 아시아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정체성의 집단적 현현으로 보여줬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지 의상이나 형식이 아니라, 협업을 통한 커뮤니티의 형성에 있다. CFGNY에게 ‘섭외’란 단순한 참여 요청이 아닌, 커뮤니티로의 ‘초대’이며,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사회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이너, 배우, 음악가, 재단사, 요리사, 심지어 어린 시절 친구들까지 다층적인 협업자들과의 작업은 단순한 협업이 아닌, 정체성을 형성하는 활동이며, 이러한 협업을 통해 CFGNY는 공동체와 함께 ‘아시아적’이라는 말을 재정의한다. ‘아시아성’은 단일하지 않으며, 언제나 새로운 관계 속에서 다시 쓰이고 구성된다는 사실을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Fashion Max 2’ 전시 모습. <출처=www.interviewmagazine.com>

◇복제라는 창조적 행위=CFGNY가 아시아 정체성과 더불어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다른 주제는 ‘복제’와 ‘가짜’라는 개념이다. 이들은 ‘짝퉁’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조롱과 열등의 정서를 전복해 오히려 그것을 창조의 전략으로 삼는다. 이들은 복제를 통해 ‘진짜’라는 범주 자체를 의심하고 재고하게 한다.

2018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Fake Fashion III’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전시에서 CFGNY는 프라다, 마르지엘라, 디올, 발렌시아가 등 고급 브랜드의 스타일을 모호하게 차용한 ‘짝퉁 컬렉션’을 런웨이 형식으로 선보였다. 여기에는 아시아인을 ‘짝퉁’과 동일시 하는 서구의 시선에 대한 비판이 스며 있다. 즉 아시아인의 정체성이 불법적이거나 이류 상품과 암묵적으로 연관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며, 예술적·물질적 가치를 인종과 연결하는 낡은 서구적 가정에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더 나아가 유럽 고급 브랜드 디자인을 ‘복사’하거나 ‘차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냄으로써, ‘복제품’처럼 불완전하고 혼종적인 정체성이 위조나 모방이 아닌 창조의 행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복제가 창조의 가능성을 품을 수 있다는 관점은 2022년 전시 ‘Import Imprint’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전시에서 CFGNY는 도자기, 골판지, 재인쇄된 풍경화 등을 활용해 미국 가정 장식 속에 잠재된 아시아적 흔적을 발굴해 낸다. 특히 슬립 캐스팅 방식으로 제작된 도자기 오브제들은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졌지만, 각기 다른 유약과 형태로 마감함으로써 ‘복제된 고유성’이라는 역설을 드러낸다. 여기서 ‘가짜’는 더 이상 열등하거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복제되며 진화하는 유동적 정체성의 상징이 된다.

이들은 또한 전통적 건축 장식(난로, 벽지 등)을 골판지로 재현함으로써 미국 중산층이 꿈꾸는 이상적 이미지를 비튼다. 저렴하고 가볍고 쉽게 운반되는 골판지는, 글로벌 자본주의 속에서 ‘값싸고 대체 가능한 존재’인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의 지위를 암시한다. 이러한 재현은 ‘틀어진 복제’, ‘망가진 정밀함’으로 표현됨으로써 원본 중심의 사고를 해체하고, 복제가 지닌 창조적 잠재력을 가시화한다.

CFGNY는 기존의 ‘진짜·가짜’라는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의미의 공간을 만든다. 이분법이 해체된, 이 모호한 공간은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복제를 통한 존재의 다층성과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CFGNY의 전략은 분명하다. 그것은 모호함을 통해 경계를 흐리고, 복제를 통해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이 실천은 점점 복잡해지는 정체성 정치의 장에서, 하나의 강력한 대안적 언어가 될 수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