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람’에게 미뤘던 책임, 이제는 ‘기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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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윗사람’에게 미뤘던 책임, 이제는 ‘기자’에게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국책은행 수장으로 최소한 자존심 지켰어야

기사입력2016-06-12 16:15

박현진 기자 (kpla12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천기누설’ 파장이 커지자 홍기택 전 KDB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규모 및 분담방안 등은 관계기관 간 협의조정을 통해 이뤄진 사항”이라고 지난 10일 해명했다. 또 “보도된 내용은 공식 인터뷰가 아니라 지난달말 해당 언론사 기자와 AIIB 관련 세미나 협조를 위한 환담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기택 전 KDB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의 남 탓이 또 회자되고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밝히더니 파장이 커지자 이번에 보도내용은 환담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사진의 서울 여의도의 KDB금융그룹과 산업은행. ©중기이코노미

이날 해명에 앞서 홍 전 회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참석해 보니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지원 비율까지 정해져 있었고,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밝힌바 있다.

파장이 커지자 한발 물러난 모양새이지만 ‘비겁하고 무책임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홍 회장은 ‘서별관회의’ 당시 한국산업은행법에 의해 설립된 국책은행의 수장이었다. 대한민국의 산업개발과 국민경제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중요자금을 공급·관리하는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수조원 이상 되는 대우조선해양의 불법·부실경영, 대한민국 조선업의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홍 전 회장이 보여준 첫 모습은 ‘나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윗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했으니. 홍 회장은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랬다면 대우조선을, 대한민국 조선업을 이 지경까지 만든 책임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관치금융의 일단을 도려내고 청산하는 데 밀알 정도는 됐어야 했다. 홍 전 회장은 그렇게 해서라도 대한민국 국책은행 수장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켰어야 했다.

홍 전 회장은 그렇지 못했고 최소한의 자존심도 버렸다. ‘윗사람’에게 미뤘던 책임을 이제는 기자에게 돌렸다. ‘환담’과 ‘공식 인터뷰’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기자 맘대로 쓰느냐고. 홍 전 회장은 2016년 2월부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IIB 리스크담당 부총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