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은 도시의 반란, 말뫼의 色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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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 ㅣ 유럽 점잖은 도시의 반란, 말뫼의 色에 홀리다 이혜원 기자의 북유럽유랑기 ⑧스웨덴, 무채색 벗은 공공건축

기사입력2015-09-06 16:55

이혜원 기자 (dipsy@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스웨덴 남부도시 말뫼에는 몇가지 독특한 건축물이 있다. 얌전한 도시 속에 숨겨진 형형색색의 건축물을 찾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작심하고 간 프랑스 파리는 생각보다 실망스럽고, 불시착한 독일 칼스루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여행이라는 게 그렇다. 기대를 품었던 장소가 아닌 의외의 공간에서 감동을 받곤 한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실망한 쪽에 가까웠다. 물론 그곳은 영화에서 봤던 그대로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듯 했다. 모든 것이 잘 갖춰진데다 관광객은 너무나 많았다. 이전에 머물렀던 핀란드 헬싱키가 잔잔한 도시였기에 더욱 피로감이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4시간을 내달려 도착한 남부도시 말뫼는 의외로 마음에 쏙 들었다. 여행 전만해도 말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도시였다. 다음 행선지였던 덴마크 코펜하겐 가까이에 말뫼라는 도시가 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호텔을 예약한 게 전부다. 미지의 도시에 간다는 호기심도 약간은 있었다.

스웨덴 3대도시라는 말뫼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평화롭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공원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공원 한 편에는 여자아이 한 명이 옷을 입지 않은 채로 분수에서 나오는 물을 맞으며 놀고 있었다. 즐겁게 노는 그 아이를 30분쯤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관광객이 보이지 않자 마음이 놓였다. 동쪽에서 10시간을 날아서 온 관광객이 할 말은 아니지만 실상이 그랬다. 시끌벅적한 도시보다는 조용한 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말뫼현대미술관은 건물 외벽과 미술관 내 카페 모두 주황색으로 돼 있다.

미술관 물품보관함은 온통 노란색이었는데, 보관함에는 번호마다 각기 다른 미술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48번은 한국작가 백남준의 자리다.

말뫼의 매력은 의외성에 있었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듯 보이는 고요한 도시에 강렬한 색을 쓴 건축물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첫 번째 건물은 말뫼현대미술관. 갈색 벽돌 집들 사이로 철골조로 만들어진 큐브 모양의 건물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철골조는 채도가 높은 선명한 주황색이었다. 한국이라면 공공건축에는 결코 쓰지 않을법한 색이었다. 이 미술관의 주황색 사랑은 외벽에만 그치지 않았다. 건물 내부 카페도 전부 주황색이었다. 바닥부터 기둥, 테이블, 의자, 선반까지 빼놓지 않았다. 무채색 공간에 주황색 페인트를 뿌려놓은 양 보였다.

화장실과 물품보관함은 온통 노란색이었다. 은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선명한 색이었다. 보관함 문에는 번호와 함께 각기 다른 미술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2번은 알렉산더 칼더, 17번은 프랜시스 베이컨이고 48번에는 한국 비디오아트 작가인 백남준의 이름도 적혀있었다. 각각의 보관함 안쪽에는 작가가 생전에 남긴 말이 새겨져 있었다. 짐이 없어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는 시도로 보였다. 그중에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꼭 그 자리에 내 짐을 맡겨놓고 싶을 터다. 사소하지만 물품보관함을 가지고도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싶었다.

말뫼공항도 나를 놀라게 했다. 이 공항의 외벽도 선명한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깔맞춤’은 공항 내부로도 이어졌다. 공항에 있는 항공권 발매기와 안내판에 적힌 글씨 색깔도 같은 색이었다. 왜 이리도 노란색이 많을까 생각해보니 스웨덴 국기가 떠올랐다. 파란 배경에 노란 십자가가 가로로 누워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스웨덴 여행 중에 봤던 우체통도, 이케아 로고도, 지하철 기둥도 모두 노란색이었다. 스웨덴의 못 말리는 노란색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