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법이 있었다면 SKT가 이렇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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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집단소송법이 있었다면 SKT가 이렇게 했을까 집단소송법은 ‘기업 규제’가 아닌 ‘기업 경쟁력 강화’ 조치다

기사입력2025-05-15 11:00

김주호 객원 기자 (dream@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팀장

전 국민의 절반인 가입자 2300만명, 2024년 영업이익 1조8000억원, IT강국 대한민국의 이동통신서비스 시장점유율 부동의 40%. 이러한 SK텔레콤이 가입자들의 유심정보를 해킹 당해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악의 유출사고…더 최악인 것은 ‘후속 대처’

지난 4월 18일 오후 6시, SKT는 최초로 이상 움직임을 발견했다. 오후 11시경에는 악성코드 발견 사실과 해킹 공격이 확인됐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SKT는 사고가 발생하면 24시간 이내에 과기부장관이나 한국인터넷진흥원에 신고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해킹 사실을 확인한지 이틀, 이용자 유심정보 유출이 확인된지 하루 만인 20일에야 인터넷진흥원에 뒤늦게 신고했다.

신고사실이 알려지자 대한민국은 혼란에 빠졌다. 단순한 소통수단을 넘어 금융, 전자결제, 건강, 이미지 정보 등 전 국민의 필수품이자 민감정보의 결정체로 자리잡은 휴대전화의 유심정보 유출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복제폰과 금융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나왔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과 금융기관들도 주요 임직원들의 유심교체를 권고하면서 혼란은 더욱 커졌다. SKT 판매점과 대리점에는 유심을 교체하려는 시민들의 대기줄로 이른 아침부터 장사진을 이뤘고, 유심 재고가 없어 빈손으로 돌아가는 시민들의 불만도 터져나왔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별도의 유심 물량을 확보해두고 신규회원을 모집한 것이 적발돼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요금납부 안내나 광고에는 문자를 아끼지 않던 SKT가 유심교체나 유심보호서비스 가입 안내는 가입자들이 직접 홈페이지에 찾아들어와야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분노지점이었다. 유심보호서비스 가입도 신청자에 한해 진행하다가 뒤늦게 자동가입으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연간 1조8000억원의 영입이익을 올리는 이동통신 1위 대기업임에도 정작 정보보호 투자액은 가입자가 절반에 불과한 KT의 절반 수준인 600억원(가입자 1인당 2400원, KT는 6700원)에 불과하고, 이통사들 중 유일하게 유심 핵심 ‘인증키’를 암호화하지 않은 것도 뒤늦게 드러났다.

기업하기 어려운 한국?…미국은 이러면 망한다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전 세계적으로도 반복되는 문제 중 하나다. 그러나 각국의 대응은 사뭇 다르다. 2018년 9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유명한 ‘메타’는 해킹으로 인해 유럽연합에서 약 300만개, 전 세계에서 2900만개 페이스북 계정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가 유럽에서만 약 38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미국에서는 3대 이통사 중 하나인 T모바일이 776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가,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이 제기돼 약 4590억원, 1인당 최대 3200만원의 보상을 합의했다.

SK텔레콤이 가입자들의 유심정보를 해킹 당해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SKT는 수많은 가입자들의 위약금 면제 요구에 ‘회복이 어려운 수준의 손실’을 이유로 들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떨어진 주가보다 더 바닥까지 떨어진 전 국민의 신뢰, SKT의 기업가치에 대해 더욱 무겁게 고민해야 한다. <사진=SKT>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의 경우 1~2년마다 크고 작은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보상도 제재도 미미하기만 하다. 2023년 7월에도 LG유플러스는 약 30만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지만 68억원의 과징금 부과에 그쳤고, KT는 2012년과 2014년 2차례에 걸쳐 무려 20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지만, 각각 7억5000만원과 7000만원의 과징금 처분에 그쳤다. 이마저도 2014년 사건의 경우, KT가 대법원까지 소송을 제기해 과징금 처분이 취소되기도 했다. 방통위의 과징금 처분도 취소되는 마당에, 개인정보를 유출 당한 개개인의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해 대기업을 상대로 피해를 입증하고 손해배상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바로 OECD 국가들이 대부분 도입하고 있는 ‘집단소송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집단소송법은 ‘규제’가 아닌 ‘기업 경쟁력 강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고를 일으켜도 과징금 제재도 약하고, 집단소송으로 막대한 손해배상을 할 우려도 없는 상황에서 과연 기업들이 굳이 보안투자나 보안기술 발전에 선제적인 투자를 할까?

그 답은 어느 누구보다 이번 사태에서 SKT가 잘 보여줬다. 소비자 집단소송으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면 기업들은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해 보안투자를 늘릴 것이고, 이러한 투자는 자연스럽게 보안기술의 발전과 정보보안산업 육성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가올 인공지능과 플랫폼 사회에서 개인정보 집적과 활용, 이를 지키기 위한 보안기술의 발달은 ‘국가안보’, 나아가 ‘국가경쟁력 강화’와도 직결된다. 지금이야 이동통신3사가 외국기업의 국내진출이 사실상 막혀있는 안정적인 통신시장에 안주하고 있지만, 탈통신을 통해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 더 이상 보안투자를 게을리 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해외 소비자들은 집단소송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역차별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집단소송법 도입이 ‘기업 규제’가 아닌 ‘기업의 경쟁력 강화’인 이유다.

문재인 정부도 발의한 ‘집단소송법’ 약속지킬 때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을 약속했고, 2020년 9월 법무부가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정부안으로 공식 발의했다. 물론 당시 가짜뉴스 근절을 이유로 언론사를 징벌손배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상법 개정안을 세트로 발의했다가, 당시 야당과 언론의 반발에 막혀 논쟁만 일으키고 제대로 추진도 되지 못했다. 그 결과 2021년 KT 유무선망 불통 사태, 2022년 카카오 불통 사태, 2024년 티메프 사태까지 다양한 소비자 피해 사태가 일어났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된 피해구제와 재발방지 대책이 세워진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에 가깝다.

다가올 대선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진정으로 국민 보호와 기업 경쟁력 강화, 4차산업 육성을 위해 ‘집단소송법’부터 제정해야 한다. 특히 민주당은 지난 정권에서 정부안으로 집단소송법을 발의하고 추진했던 만큼 이번만큼은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SKT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다른 이동통신사로 이동하려는 피해자들의 위약금을 즉각 면제하고, 오히려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 이는 절대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SKT가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제시한 ‘약관’에 근거한 것이다. SKT의 계약이란 본인에게 유리한 것만 수용하고 불리한 것은 수용하지 않으면 되는 것인가?

이번 사태를 통해 SKT가 입은 손해는 단지 금전적인 피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SKT는 수많은 가입자들의 위약금 면제 요구에 ‘회복이 어려운 수준의 손실’을 이유로 들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떨어진 주가보다 더 바닥까지 떨어진 전 국민의 신뢰, SKT의 기업가치에 대해 더욱 무겁게 고민해보길 바란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