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보이는 것을 담지만 그보다 많은 걸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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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사진은 보이는 것을 담지만 그보다 많은 걸 담는다 사진이 한 장도 없던 사진가의 전시…김익현 작가의 ‘사진 전’

기사입력2025-07-09 08:08

박선호 미술작가 (sunhopark.info@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최근에 읽은 책에서는 사진이 예술 작품보다는 심전도 기록에 가깝다고 쓰여 있었다. 세계가 광학 장치를 통해 해석 가능한 무늬로 변환된다는 은유였다. 사진을 단지 하나의 이미지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고 기록하는지를 따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진을 재현의 결과가 아닌 선택의 행위로 본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기억과 시선, 특정한 시간의 빛과 감각을 붙잡아 둔 형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누군가의 선택에서 비롯된, 감각적 질문으로서의 사진이 되는 것이다. 사진은 이처럼 보이는 것을 담지만 동시에 보는 것보다 많은 걸 담는다.

5월 13일 화요일, 시청각 랩에서 김익현 작가의 ‘사진 전’이 열렸다. 이를 알리는 게시물에는 운영 시간이 일출부터 일몰까지인 오전 5시 25분부터 오후 7시 32분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해가 뜰 때 열고 해가 질 때 끝나는 전시? 어쩌면 빛을 보여주기 위한 시간을 정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사진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사진 한 장 없는 사진가의 전시를 열어 보고 싶다”라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사진의 조건과 사진을 남기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다.

전시 전날인 5월 12일 월요일,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이른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누웠다. 일과 시작 전, 가능한 가장 이른 시간에 전시를 보러 가겠다는 마음으로.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전시장에 도착하는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 보며 잠이 들었다. 어둑한 거리를 지나 전시장에 도착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전시장으로 향하는 내내 밝고 맑은 풍경이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 전시장은 동굴처럼 깜깜했다. 뭔가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뒷걸음질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며 차차 희미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고, 전시장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김익현, ‘사진 전’, Ø65 볼록렌즈(Bonfoton社), 암막 시트, 가변 크기, 14시간 7분. <이미지 작가 제공>

어두운 방. 중앙 창문에 동그란 렌즈가 달려 있다. 유리를 통해 유입된 빛이 공간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다. 렌즈 너머로 창문 너머 풍경이 보인다. 무언가를 짓고 있는 거대한 크레인이 보이는 건너편의 모습이. 창문의 반대편에는 작고 흰 벽이 있다. 이곳에 바깥의 풍경이 맺힌다. 전시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바깥의 풍경이 작은 구멍이나 렌즈를 통해 어두운 방 안 벽에 거꾸로 투사되는 원리를 이용한 초기 광학 장치)로, 창문 밖의 풍경이 전시장에 스민다. 도로에 자동차가 달려가면, 전시장에도 자동차가 거꾸로 뒤집힌 채로 지나간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천천히 드러났다. 공간 끝 벽면에 놓인 의자에 작가가 앉아 있다. 관객이 오기까지 그는 어둠 속에 있었다. 카메라 옵스큐라에 파묻힌 채로.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전시장에서 본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또한 나는 “사진을 (비물질의 형태로) 가져오라”라는 방문 안내에 따라 가져간 사진 두 장에 얽힌 기억을 전했다. 실제 사진을 꺼내어 보여주지는 않고 그저 사진을 둘러싼 이야기만을 전했고, 이야기에 대한 답례로 그는 나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봉투에는 ‘빛을 담을 수 있는 장치’가 들어있었다. 그의 옛 작업의 뒷면에 시아노타입(cyanotype, 자외선에 반응하는 감광지를 제작해 햇빛에 노출한 뒤 물로 현상함으로써, 특유의 짙은 파란색 이미지를 얻는 초기 사진 인화 기법)용액을 덧바른 종이었다.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했다. 이 짧은 교환은 인화된 이미지의 존재보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감각적, 잠재적 조건에 관해 생각하게 했다.

광학의 영역에서 사진은 빛을 포착한다. 인식의 영역에서 사진은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기록한다. 그렇기에 사진은 언제나 이것과 저것, 여기와 거기, 그때와 지금 사이를 가르며 그 경계에 존재한다. 그러나 사진을 단지 하나의 이미지로만 이해한다면, 이러한 복합적인 성질은 좀처럼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진은 우리를 빛과 시간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이며, 우리가 본 세계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김익현의 질문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찍지 않는 사진’, 혹은 ‘빛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사진’”(김익현, ‘사진 전’ 서문, 2025 참조)을 만들 수 있다면—그 사진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드러낼 수 있을까?

사진이 한 장도 없던 사진가의 전시. 김익현의 ‘사진 전’은 바로 그러한 사진의 가능성—무언가를 포착하지 않거나, 볼 수 없는 것을 감각하는 사진, 빛의 질서에 기대지 않고도 세계를 드러내는 사진—에 대한 제안이자 상상처럼 느껴졌다. 실재하는 이미지 없이도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는 사진. 그리고 그 사진을 통해 맺힌 질문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드러난 빛처럼, 늦게 도달했지만 오래도록 남았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박선호 미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