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확산으로 수많은 ‘언어’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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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미래 ㅣ HIT! 이 기술 생성형 AI 확산으로 수많은 ‘언어’가 사라진다 다양한 언어의 파괴자인가 위기 언어의 구원자인가…AI의 두 얼굴㊤

기사입력2023-08-22 00:00

우리는 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우기도 하고, 해외에 가면 그 나라의 기초적인 언어를 미리 공부하기도 한다.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언어를 쓰는 것은 마치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특정 언어를 중심으로 획일화되는 추세에 놓여 있다.

언어가 소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챗GPT와 같이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을 기반으로 한 생성형 AI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다면 AI는 인간의 언어 다양성을 해하는 나쁜 기술일까? 반대로 AI를 이용해 이미 사라졌거나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를 보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AI가 인간의 언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언어 다양성을 보존하는데 AI를 활용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 세상의 언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언어란 의사소통 도구일 뿐만 아니라 사회 관습적 체계인 만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수히 변화를 겪으며 발전하고 때로는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의 소멸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할지라도, 오늘날 세계 언어의 다양성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쓰이는 언어의 수는 7000여개인데, 그 중 1/3이 넘는 2680여개의 언어가 소멸 위험에 처해 있다. 2010년 유네스코가 발간한 ‘위험에 처한 세계 언어 지도(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0년 사이에 전 세계 230개의 언어가 영구히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2주에 1개꼴로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 ‘금세기가 끝나기 전에 전 세계 언어의 절반 이상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언어의 다양성이 무너지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먼저 자연재해와 기후위기, 환경파괴, 질병의 확산, 국제분쟁이나 내전 등의 물리적 요인이 있다. 이보다 더 큰 이유로는 사회적·문화적 요인을 들 수 있다. 어떤 공동체가 특정 언어를 지배적인 문화로 받아들이면서 그 언어의 영향력이 커지는 반면, 다른 언어들은 밀려나면서 사용 빈도와 사용자가 점점 줄어들고 소멸에 이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 토착 주민의 인구를 압도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거나 지배 계층으로 올라섰을 경우, 원주민이나 소수 민족의 언어가 사라질 수 있다.

표준어와 같이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을 자랑하고, 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더욱 크게 키우는 상황이 지속되면, 방언과 같은 언어는 상대적으로 밀려나게 된다. 공공기관과 교육기관에서 특정 언어만 사용하거나, 어떤 언어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가 없는 것도 언어의 소멸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화와 이민 등으로 전 세계가 하나로 묶이면서 주류 언어로 영어가 채택된 것 역시 소수어의 소멸과 연관이 있다. 이를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언어의 세계에도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남의 일인 것만 같지만, 우리나라의 제주어도 유네스코가 2010년 지정한 소멸 위기의 언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방 소멸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향후에는 지역 고유의 정서와 문화를 담은 방언이 사라질 수 있다. 언어는 해당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수가 적거나,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들 경우 젊은 세대에게 전승이 되지 않으면서 소멸되기 때문이다.

챗GPT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답변의 질을 높이고 싶다면 영어로 질문하라”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챗GPT가 다른 언어 데이터보다 영어 데이터를 훨씬 많이 학습했기 때문이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앞서 언급한 이유 외에도 최근에는 챗GPT와 같이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기반으로 한 생성형 AI가 언어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 왜 그럴까?

생성형 AI, 소수어 사라지게 하는 타노스?

챗GPT와 같은 AI가 언어 소멸에 영향을 끼치는 이유에 관해 알려면, 먼저 사람이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과 생성형 AI가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선생님이 있는데, 한국인 학생과 미국인 학생, 태국인 학생이 선생님에게 모국어로 같은 질문을 한다고 가정하자. 선생님은 같은 내용의 답변을 각각의 언어로 바꿔서 대답해줄 것이다. 한국 학생에게 알려준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 학생에게 알려주고, 태국어로 번역해 태국 학생에게 똑같이 가르쳐줄 것이다. 즉,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더라도 세 학생이 얻는 답변의 내용에는 차이가 없다.

반면 AI는 그렇지 않다. AI는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프롬프트(Prompt, AI에 명령을 내리기 위해 사용자가 입력하는 문장이나 내용) 언어에 따라 답변 내용이 다를 수 있다. 사용자가 특정 언어로 질문하면 AI는 ‘해당 언어로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답변을 도출한다. 즉 챗GPT에 영어로 질문하면 영어로 입력된 데이터, 중국어로 질문하면 중국어로 입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답변한다. 챗GPT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답변의 질을 높이고 싶다면 영어로 질문하라”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챗GPT가 한국어 데이터보다 영어 데이터를 훨씬 많이 학습했기 때문에, 영어로 질문했을 때 보다 양질의 답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챗GPT를 비롯한 AI는 겉보기에 ‘사람처럼’ 대답하지만, 사실 AI는 자체적인 생각과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존재가 아니다. AI는 사용자가 질문을 하면 질문 속의 단어와 패턴 등을 식별하고, 자신이 학습한 언어로 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보를 찾은 뒤 각종 단어들을 조합해 관련된 내용을 제시할 뿐이다. 즉 AI는 인간 선생님과는 달리, 각 학생들의 모국어 데이터에 따라 다른 답변을 제시한다. AI가 어떤 언어로 된 데이터를 많이 학습했는지에 따라 AI의 답변 품질도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가 사용 인구가 많은 언어, 즉 영어로 된 자료를 중점적으로 학습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용자들이 챗GPT에 영어로 질문을 하고 있으며, 챗GPT는 영어로 답변하면서 영어로 된 자료들을 끊임없이 생산한다. 영어로 더 많은 데이터가 생성될수록 영어를 기반으로 한 AI의 정확도는 더 향상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영어의 영향력은 이전보다 더욱 커지고 있다. 앞으로 AI가 학습과 업무에 두루 쓰인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로 AI를 활용할 것이다. 결국 영어나 중국어 등 사용자가 많은 언어는 더욱 방대한 데이터를 쌓으며 영향력을 키우겠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점진적으로 밀려날 수 있다.

그렇다면 AI가 상대적으로 적게 학습한 언어, 즉 소수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의 이중언어 및 언어심리학 연구소장인 비오리카 마리안(Viorica Marian)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사용하는 생성형 AI가 확산함에 따라 수많은 언어가 사라질 수 있다’라는 내용을 2023년 4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바 있다. 기고문에 따르면, AI는 주로 영어, 만다린어(중국 표준어), 러시아어, 독일어, 일본어 등 사용 인구가 많은 20개 언어 자료를 학습하며 해당 언어로 된 자료를 무수히 생성한다. 그는 “이는 침입종 생물처럼 주도적인 언어가 다른 언어를 축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인간 사고의 다양성과 창의성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기이코노미 안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