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이 거니는, 플라뇌르의 무심한 일상

프린트

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파리지앵이 거니는, 플라뇌르의 무심한 일상 파리의 삶을 그리는 도시 산책자…귀스타브 카유보트㊦

기사입력2021-11-11 17:53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귀스타브 카유보트와 파리㊦]카유보트가 공식적으로 인상주의와 교류를 드러낸 것은 1876년 제2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가하면서부터다.

그 전시에서 그는 도시 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마루를 깎는 사람들(The Floor-strippers, 1875)’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상반신을 벗고, 힘차게 마루의 광택제를 벗겨내는 노동자의 움직임과 탄탄한 근육을 가진 몸이 인상적이다. 특히 역광으로 인해 일꾼들의 등과 팔은 반짝이고, 바닥에 벗겨지지 않는 광택제 줄무늬가 번들거린다. 그와 대조적으로 광택제를 이미 벗겨낸 부분은 하얀 살갗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인상주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이런 작품이 인상주의 전시회에 전시되었다는 것이 의외일 정도다.

◇인상주의 화가들과의 교류=카유보트는 사실주의 화가 레옹 보나에게 그림을 배우고, 프랑스 미술아카데미 산하에 있는 에콜 데 보자르를 다녔을 정도로 전통적인 미술수업을 받으며, 전통 회화의 길을 밟아 갔다.

그랬던 그가 전통적 회화를 타파하고 아카데미 미술에서 벗어나려 했던 인상주의에 합류하게 된 것은 왜일까? 어쩌면 늦게 시작한 미술공부로 기존 미술제도권에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굳어있는 전통의 미술 문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인상주의에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마루를 깎는 사람들’은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살롱전’ 낙선작이다. 이 작품이 ‘살롱전’에 선발되었다면, 아마도 카유보트의 작업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상주의적인 모습보다는 더 정밀하고 전통적인 아카데미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마루를 깎는 사람들’, 1875, 캔버스에 유채, 102×146.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살롱전’은 프랑스 미술아카데미의 공식 전시로, 그 당시에는 무척 권위 있는 전시였다. 이 작품은 뛰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1875년 ‘살롱전’ 심사에서 낙선했다. 심사위원은 “저속하고 천박한 주제를 다룬 작품”이라고 평했다. 신화나 영웅, 종교 등이 아닌 도시 노동자의 삶을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 낙선의 이유였다.

카유보트는 이듬해인 1876년에 르누아르의 소개로 인상주의 그룹에 합류했고, 그해에 열린 제2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이 작품 ‘마루를 깎는 사람들’을 포함한 8점을 전시했다. 인상주의가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시기였다. 카유보트는 이런 시기에 인상주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