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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ILO 협약 비준, 대통령의 결단만이 유일한 방법
30·50클럽…노동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후진국 오명 떨쳐내야
- 기사입력2019-05-01 00:3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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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회 노동절(5월1일)을 맞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정부에 요구했다. 천주교주교회의는 담화문을 통해 “국제노동기구가 정한 핵심협약 8가지 가운데 일부는 아직 비준되지 않고 있다”며 “보편적 노동권 존중에 더 이상 늦어지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反인권 발언 및 극우적 행태, 종교인 면세 주장 등 이미 권력화됐다는 비난을 받는 종교계가 노동자의 어려운 처지를 헤아렸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반갑다. 이번 담화문을 계기로 천주교뿐만 아니라 개신교·불교 등 여타 종교계의 주류 또한 기득권에 편승하기보다 사회적 약자를 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이다.천주교주교회의가 비준을 촉구한 ILO 기본협약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단체교섭권 보호에 관한 협약 제87호 ·제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제29호·제105호다. 강제노동 협약 비준을 위해서는 공익근무요원·산업기능요원에 대한 ‘강제노동’, 불법파업을 이유로 구속된 노동자의 교도소(강제) 노역을 금지하는 등 정부조치가 뒤따라야한다. 협약 비준에 앞서 선결돼야할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정부의 결단만으로 가능한 사안이기에 강제노동 협약 비준은 논쟁거리도 많지 않고, 노사간 이견도 크지 않다.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 노사정 특히 노사 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협약은 제87호·제98호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열린 ‘공무원노조특별법 폐지 및 대통령 약속이행 촉구 결의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단체교섭권 보호에 관한 협약 제87호·제98호는 노동권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ILO 회원국이면 비준의무를 부담해야하는 기본협약이고, 대한민국 헌법 제33조에 명시된 노동3권과 동일한 내용이다. 헌법 제33조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했다. ILO 제87호·제98호와 헌법 제33조가 충돌하는 지점은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는 동조 제2항이다. 헌법상 노동3권에 따라 공무원의 노동3권을 보장해야할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이, 조합원 가입대상 제한은 물론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과도하게 제한해서 문제다.합법적으로 설립된 교원노조는 2013년 10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 아님’을 통보받은 이후 지금껏 ‘법외노조’ 지위를 갖고 있다. 당시 5만여명의 조합원 중 노조활동으로 해고된 9명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노조규약이 불법이란 게 ‘노조 아님’ 통보 이유다, 공무원노조도 같은 이유로 9년간 법외노조 신분을 가졌다가, 지난해 노조가 규약을 개정해 조합원에서 해직자를 제외함으로써 ‘법내노조’가 됐다. 법외노조란 노조 존재가 불법은 아니지만,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권 등 노조법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어 정상적인 노조활동이 가능하지 않은 ‘임의단체’다.교원노조법과 공무원노조법을 ILO 제87호 협약 원칙에 맞게 입법했다면, 양 노조는 법외노조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라는 천주교주교회의의 요구는 교원과 공무원에게 노조 조직 및 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하라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대선 당시 ILO 기본협약(제87호·제98호·제29호·제105호)을 비준하고, 기본협약과 충돌되는 국내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약했다.ILO 제87호 협약이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에 관한 내용이라면, 제98호 협약은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와 관련된 내용을 담았다. 제98호 협약과 충돌하는 국내법은 부당노동행위와 관련된 노조법 규정이다. 노조법에 따르면 노조활동에 대한 사용자의 지배·개입을 차단한다는 취지로,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의 급여를 지급하거나 노조운영비를 지원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그러나 ILO는 제87호 협약에 근거해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와 그 위반에 대한 처벌규정을 철폐를 한국정부에 지속적으로 권고했다. 아울러 유급전임자 수를 제한하는 타임오프제에 대해서도, 노사자율로 진행되는 단체교섭에 정부가 입법적으로 간섭한다는 이유를 들어 타임오프제 폐지도 권고했다.이외에도 실업자의 노조가입 불허(제87호),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노조결성권 제한(제87호),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과정에서 소수노조 교섭권 박탈(제98호)을 규정한 국내법 역시 ILO 기본협약을 위반한 사례다. 천주교주교회의는 담화문에서 “성경과 역대 교황님들의 가르침 안에서 노동이 가지는 중요한 가치”를 환기시키면서, “임금·산업안전·고용의 문제 등은 우리가 노동의 가치를 얼마나 잘 알고 있고, 또 현실적으로 지키려 하는지를 나타내는 법적·제도적 기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기본권을 명시한 ILO 기본협약을 법적·제도적 기준으로 세우고 헌법상 노동3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할 때, 우리사회에서 노동권 존중이 보편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누차에 걸쳐 약속했던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되는 세상’도 ILO 기본협약 모두에 대한 전면적 비준이 전제된 나라다.ILO 기본협약은 물론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은 그 자체로 존중되고 당연히 보장돼야하는 생존권적 기본권이다. 노동3권 보장을 위해 사용자와 합의·타협 등 사회적 대화의 의제로 가져가야할 만큼 우리 경제 규모나 질 모두 뒤지지 않는다. 1950년 이전에 제정된 기본협약이고 제87호 협약은 155개국이 비준했으며, 제98호 협약은 165개국이 비준했다. 30·50클럽(국민소득 3만달러이상, 인구 5000만이상), 전세계에서 한국을 포함 7개 국가만이 누릴 수 있는 명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영계는 ILO 기본협약 비준의 대가로 ▲쟁의행위시 사업장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파업시 대체근로 인정 ▲부당노동행위제도 폐지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명확화 등 반쪽짜리 노동3권을 주장한다.또 ILO 기본협약 비준 절차를 둘러싸고 ‘선입법 후비준’인가, 아니면 ‘선비준 후입법’ 논란도 있다. 20대국회 지형에 비추어 분명한 사실은 ‘선입법 후비준’은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점이다. 경영계가 반쪽짜리 노동3권을 포기할리 없고, 자유한국당이 나서 온전한 노동3권 입법을 추진할리 만무해서다. 천주교주교회의의 바람이 현실화될 수 있는 방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 외에는 없다. 대통령이 헌법상 권한인 비준권을 발동해 ILO 기본협약을 비준한 이후 입법절차를 거치는 방법뿐이다.노동기본권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후진국이란 오명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